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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도우수 자전거길:[사적지]인천상륙작전 윌리엄 쇼(서위렴2세) 추모 <200927>

sanriro 2020. 9. 20. 21:32

 

쉐도우수 자전거길:[사적지]인천상륙작전 윌리엄 쇼(서위렴) 추모 <200927>

대열 자전거 팀 라이딩

 

 

일시: 2020.9.20.(일) 09;00~15;00

참가: 스머프, 아스트라, 쉐도우수, 홍토마 (4명)

 

코스: 역촌역-은평평화공원/윌리엄쇼기념비-불광천/해담은다리-홍제천-한강-절두산성지/윌리엄쇼묘지-한강인도교/6.25미공병참전비-전쟁기념관-삼각지원조대구탕-서울역-남대문-청계평화광장-이승만광장-경복궁(25km)

 

요도 : 생략

 

 

이날 코스는 태릉동기생 자전거 팀과 동행해 70년 전 6,25북한남침을 결정적으로 분쇄한 구국의 인천상륙작전(915)을 기념한 라이딩 길이다.

동시에 미국인이면서 1922년 선교사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났다고 한국인임을 자처해, 당시 이 서울수복작전에 참전해 고귀하게 희생된 감동의 윌리엄 해밀턴 쇼 미 해군 대위에 대한 감사와 추모의 길이었다.

 

서울 6호선 은평역 4번 출구 앞 은평평화공원에 자리한 <>대위 기념비를 먼저 찾아 감사의 경례를 올렸고, 불광천과 홍제천으로 나가, 한강 양화대교 북단 절두산 성지의 양화진 외국선교사 묘원에 안장된 그의 유택에서 진정한 추모의 염()을 다시 전해 올리기도 했다.

 

한강 길을 더 달려 인도교 북단 아래 또 하나 미군의 6,25전적지인 <미공병부대 참전비>와 삼각지의 <전쟁기념관>을 다시 찾아 호국 영령들에 경의를 표하고. 삼각지 로터리 맛집 <원 대구탕>에서 점심을 한 후, 시원하게 확보된 자전거우선도로를 고맙게 달려, 서울역과 남대문을 거쳐 <이승만 광장>에 도착해 경복궁 광화문을 바라보면서, 1950927일 인천상륙 서울수복 작전을 성공시킨 한미 해병들이 태극기를 꽂았던 중앙청의 엣 자취를 떠올리고 이날 라이딩을 간단하게 마쳤다.

 

아주 짧았지만 감동하면서 달린 라이딩이었다

 

6호선 역촌역 은평평화공원 0002

 

평화공원의 윌리엄 해밀턴 쇼우(William Hamilton Shaw: 한국명 서위렴2세) 대위의 기념동상. 동상에 새겨진 그의 생애와 어록이 크게 감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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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에 새겨진 소개문: 윌리엄 해밀턴 쇼는 1922년 6월50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시 PT-515(어뢰정) 부장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전쟁이후 한국 해군사관학교에서 함정운용술을 가르쳤다. 하버드대학교 철학박사과정 수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지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원 참전하였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후 계속된 서울수복작전 중 1950년 9월22일 녹번리에서 29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하였다.

 

그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해사2기생 2명이 2001년 10월 20일에 세운 기념비좌대에는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사의 염이 잘 새겨져 있고 0009

 

같은 평화공원 안. 6.25전쟁에 가족을 군인으로 떠나보내는 국민들의 절절한 염원을 담은 노래 <님계신전선>(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금사향 노래)의 노래비도 찾아보고 00014 13

불광천으로 내려서 한강을 향하는 길 0015 16

북한산11봉이 기막히게 조망되는 해담는 다리에도 올라 0018  19  27

배낭에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꽂으며 0028

 

우리의 기념촬영을 도와주신 친절한 여성분의 정말정말 귀여운 반려견들을 사진에 소장하기도 하고 0022 24

 

홍제천을 만나서 한강으로 나가면서 0029 33

 

양화대교 직전 절두산성지에 올라 0046 35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0043 37

 

어렵사리 부모님과 함께 영면하는 윌리엄 해밀턴 쇼우 대위의 묘소를 찾아 다시 한 번 추모의 감사제를 올려 0041 39 40

 

 

 

절두산 성지(양화진성지공원)를 내려서 0045

 

한강 인도교 아래 미공병6.25참전기념비도 찾아 경의를 표하고 0047

 

인도교로 올라 인도교를 뒤로하고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0048 50

 

 

 

기념관 광장을 한바퀴 돌고 나가 0052 55 57

 

기념관을 떠나 0059

삼각지로터리 골목 대구탕 집에서 이리 멎진 일미로 점심을 하고 0061 63 63-1

 

삼각지로터리 배호 노래비를 뒤로, 자전거우선도로에 감사하면서 0064 66

 

서울역과 남대문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며 달려 0068 69

청계 평화광장 거쳐 <이승만광장>의 광화문에 이르러 0071 73

 

70년 전 아찔했던 국난극복의 역사를 되새기며 라이딩을 마쳐 0077 76

 

 

 

(추록) 유익한 후기: 스머프 차

 

대열잔차는 9월에 인천 상륙작전지역과 서울 수복작전 진격로를 답사하면서 그 당시 상황을 되새기곤 하였다. 선봉의 중심에는 항상 쉐도우(명수)가 있었다. 쉐도우는 덕질하는 역사를 즐기는 편이다. 이번 라이딩은 인천 상륙작전 후 서울 수복 작전 중에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대위의 한국에 대한 애국심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높이 받들고 기념하는데 있다. 쇼 대위는 인천 상륙작전시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맥아더 장군의 보좌관을 훌륭하게 수행했으며, 서울 수복작전시는 미 해병 제1사단 5연대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하였다.

 

인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약 2주 동안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는 와중에 미 해병 제1사단과 한국 해병연대가 제일 손실이 컸다. 국군과 유엔군의 총 손실은 약 4,000여명에 이른다. 해밀턴 쇼 대위는 서울 탈환에 최 선봉으로 나섰다가 녹번리에서 인민군 매복조의 습격을 받아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외국인이지만 우리 보다 더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6.25 전쟁에 참전하여 목숨을 바친 진정한 한국인이다. 쇼 대위는 일제강점기인 19226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선교사로 활동 중인 미국인 서위렴 1(William Earl Shaw)이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1941년 추방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웨슬리언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2차 대전 때는 해군 소위로 참전하였으며 종전 후에는 한국 복무를 자원하여 1947년 부터 1948년까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생도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가 제대하고 하버드대학에서 철학 박사과정을 밟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은 나의 조국이라며 해군 대위로 재입대하고 한국전에 참전하였다.

 

쇼 대위는 참전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나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 사람입니다.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만 할 수 있습니까.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라는 감동적인 말을 남겼다. 쇼 대위는 1956년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금성 충무무공훈장, 미국 정부로 부터 은성훈장을 추서받았다. 쇼 대위의 한국 사랑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06월 역촌역 은평 평화공원에 동상이 건립되었다. 가슴에 훈장을 단 멋진 군복 차림의 쇼 대위 동상 앞에서 거수경례와 묵념을 한 후 응암 신사오거리에서 불광천으로 진입하고 절두산 순교성지로 향하였다.

 

절두산 순교성지에는 고 해밀턴 쇼 대위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아버지 얼 목사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국에 남아 대전 감리교 신학대학인 목원대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67년 쇼 대위 묘 옆에 묻혀있다. 쇼 대위 묘에서 감사의 묵념을 올리고 한강대교로 향하였다. 한강 너머로 고층빌딩이 만들어 내는 멋진 스카이 라인을 바라보면서 달리는 라이딩은 정말 멋지다. 여의도에 위치한 적색 띠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국내에서 세번째로 높은 파크원(69, 318m)이다. 서울시 전체 조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산, 서해 바다까지 바라볼 수 있다. 한강대교를 지나면 바로 도로변에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한국 전쟁기간 동안 미 공병부대 장병들이 보여준 자유수호를 위한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미 공병부대들은 긴박한 상황하에서도 한강에 부교와 도보교를 설치하여 군사작전을 도왔고 특히 1.4 후퇴 시에는 수백만명의 피난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중랑천과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생략하고 바로 전쟁기념관으로 향하였다. 전쟁기념관에서 인증샷을 한 후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삼각지 대구탕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현역 때는 육군본부에 들릴 때마다 삼각지에서 대구탕으로 식사를 하곤 하였다.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대구탕이지만 옛날 맛 그대로였다. 특히 여행 중에 먹는 맛은 정말 꿀 맛이다.

 

서울역을 거쳐 시청을 지나 청계광장에서 잠시 머물렀다. 청계천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하천이다. 청계천 사이로 보이는 고층빌딩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여 옛 중앙청 쪽을 바라보면서 1950927일 오전 610분경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거수경례하고 서울 수복의 감격을 되새겼다. 70년 전 서울 수복 당시 미 해병 5연대와 한국 해병 1연대가 지금의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하여 중앙청 옥상에 태극기와 유엔기를 게양하였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서울 수복 불과 5일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 쇼 대위가 살아 있었으면 한국 해병과 함께 태극기를 직접 게양했는 지도 모른다. 해군장교로 있었으면 전사하지 않았을 텐데 왜 해병으로 전과하여 지상전투를 자청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불타는 애국심이다. 쇼 대위는 육군 사관생도신조처럼 안위보다는 불의의 길을 택하였다. 쇼 대위는 그동안 잊혀진 전쟁영웅 이었다. 이런 훌륭한 장교가 있었다니 내 자신이 정말 부끄러울 정도다. 감동이 복받쳐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만 같다. 쇼 대위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고귀한 희생정신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 우리 국민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영원히 안식을 누리소서. 대열잔차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