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임종국의 40년 군복무 퇴임식

sanriro 2008. 7. 1. 21:51
 

임종국의 40년 군복무 퇴임식


친구 임종국의 40년 군복무 퇴임식을 함께 하다


임종국은 1968년 1월에 육사에 입교하면서 군문에 들어간 이후 소대장에서 연대장을 거치는 보병지휘관에서 현재 국방대학교 교수에 이르기까지 40년간 호국간성의 길을 걸어왔다. 매시기 매보직에서, 타고난 충직한 성품과 사생관에-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빛나는 업적을 남기는 출중한 군복무기록을 자랑해왔다, 해서 일찍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장성진급의 적임자로 낙점돼 오던중, 한때 불어닥친 이른바 oo회 숙정이라는 정치적 와류에 희생돼 대령을 끝으로 군문을 떠나게 됐지만, 40년의 진충보국 군복무 자체만으로도 그 얼마나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생이 아니었겠는가. 그 40년의 세월을 마감하는 영예로운 퇴임식이 그의 마지막 근무처인 국방대학교의 합동참모대학 본관에서 아주 조촐하나마 의미있고 알차게 진행됐다. 이 퇴임식에 참석해보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특히 임종국은 나에게 있어서는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짝이었고, 육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들어간 화랑대의 동문이며, 지금은 고교동기동창의 자전거동호회 sd16바이콜릭스의 대원으로서 함께 여가를 즐기는 인연이니, 내가 그의 퇴임식을 보며 감격하는 바와 가슴속의 울림-감동은 더욱 각별한 것일 것이다. 그 장면 장면을 여기에 사진으로 남겨본다.


임종국의 마지막 군복무 근무처이자, 2008년6월30일 오전10시30분 퇴임식이 있었던 국방대학교  합동참모대학 055 054

 

 

합동참모대학 본관-2층 회의실이 소연회식으로 치러진 퇴임식 행사장이다 053

 

행사장 회의실의 벽화 008

 

임종국이 막 퇴임식장으로 입장하는 중에 축하차 온 고교동창을 만난다 001

 

퇴임식장-행사의 임석상관 합참대학장이 임종국을 맞아주고 부인과 딸과 사위까지의 가족도 함께 한 가운데 사회의 멘트로 퇴임식이 시작됐다 009

 

합참대학 작전학 처장에 의한 임종국에 대한 경력 및 업적보고 004 012

 

 

모두가 경청하는데, 참석자 중엔 고교동창 자전거동호회 여성대원들도 005

 

특히 임종국과 가족들은 임종국의 군복무기간 중 영광스럽기도 했고 고난을 겪기도 했던 시절의 경과 보고를 숙연한 자세로 경청한다 007 010

 

 

보고자가 훌륭한 부인을 두었다는 멘트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자, 주인공인 오영숙 여사도 감사의 답례인사를 보낸다 011

 

자랑스러운 임종국 대령의 군문 일대기가 끝나면서. 축하 케이크 컷 식이 이어진다. 임종국 내외와 딸들이 함참대학장과 함께 진행했는데, 특히 이곳에 격려차 들렸다가 실질적인 임석상관이 되면서 퇴임식을 국가적행사로(사회자의 표현) 만든 국방대학총장도 나서 행사를 더욱 빛냈다 013

 

축하의 샴페인도 터뜨리고 014

 

주인공과 참석자들 모두가 축배! 건배! 충성! 브라보!  016 018 019

 

 

 

국방대학교 총장의 기념사-과거 임종국을 상관으로 모시기도 했다며, 정말 좋은 사람이란 강열한 인상을 받았다고 덕담 020

 

이어 총장의 건배에 모두가 화답 021

 

육사28기 동기생 대표 이성규 장군의 건배와 축사 022

 

꽃다발 증정- 딸들이 아버지 어머니에게 023

 

자전거 동호회 바이콜릭스에서도 여성대원들이 꽃다발을 024 025

 

 

육사동기생 색소폰 동호회 친구들의 축하 연주 027 028

 

 

합참대학 측의 퇴임선물 증정-부부동반 크루즈여행권이던가 030

 

합참대학장의 격려금(?)이 오영숙 여사에 전해지고 032

 

고교동창의 선물도 전해지며 034

 

이어 퇴임의 주인공 임종국의 고별연설-40년이 자랑스러운 자신의 결단에 의한 나의 길이었다고 자부해, 청중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036

 

*특히 자신의 인생에서 정말 최선의 멋진 4가지 선택을 했다며 자랑스러워 한 점은, 첫째 군인이 됐다는 것이고, 둘째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 오영숙을 만난 것이며, 셋째 늦었지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은 자기일생을 새로 설계할 수 있었다는 점이며, 넷째 국선도를 수련해 건강을 증진시켰다는 점이었다고 한 것이다. 들어보니 정말 부러웠다*

 

자랑스러운 남편과 아버지의 감명깊은 연설을  경청하는 아내와 딸들 038

 

퇴임식의 피날레는 육사동기생동호회 활동을 통해 연마한 자신의 색소폰 연주로 멋지게 마감했다 039 040

 

 

청중을 사로잡고 아내와 딸을 자랑스럽게 했으니 그 이상 어떻게 성공적인 연주라 아니할쏘냐  041

 

이하 기념촬영-국방대학총장과 합참대학장과 042

 

가족끼리 043

 

아우와 처남네도 함께 044

 

육사동기생과 함께 046

 

고교동창과 함께 047 048

 

퇴임식에 참석한 고교동창들의 행사장 모습 045 050

 

 

합참대학 동료들과 함께 049 052

 

 


퇴임식 뒤풀이-고교동창생과 육사동기생 참석자들만 초청된 가족끼리 오찬이 발산역근처

중국식당‘마오’에서 있었다. 이모 저모

056-065

 

 

 

 

  

 

 

 

 

이제 작별을! 임종국, 민간인으로서의 새 인생이 활짝 피시게! 066 067

 

 

 


☆☆ 다음은 감명깊었던 임종국 자신의 퇴임사와

퇴임의 심경을 담은 시'마이웨이'이다.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큰 명문이라 생각해 옮겨본다 ★★


퇴임사


훌륭한 자리를 베풀어준 국방대학교 총장님과 학장님, 동료 교수와 교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먼 길을 마다않고 와주신 육사 동기생, 고등학교 친구들, 친척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 약력을 소개한 이윤규 작전학 처장께 감사드립니다. 너무 부풀려저 쑥스러웠습니다만.....,

 

금년 2008년은 제가 태어난 지 60년이 되고, 공직자로 봉직한 지 40년이 되는, 저에게는 매우 뜻 깊은 해입니다.

어제 저는 지난 60년을 회고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복이 많은 사람, 행운아, 럭키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행운이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선택을 잘한 것이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인생에 멋진 선택을 4가지 꼽아보라고 말한다면,

 

첫째는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군인이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육사를 입교한 이후, 대한민국 국군은 소심하고 나약한 저를 가르치고, 강한 남자로 키워주고, 보호해주었습니다. 그야말로 큰 혜택을 저에게 주었습니다.그 혜택에 비해 저는 국가에 기여한 바가 부족하다 생각하고,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제 인생의 탁월한 선택은 오영숙 여사와 결혼한 것입니다. 저는 선녀를 얻은 나뭇꾼 이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의 90%는 제 아내의 내조 덕이었습니다.살아가며 어려움이 많았으나 불평 없이 자녀들을 올바르게 잘 키워주었고, 저에게 항상 용기를 주었습니다.맡은 직무에 충실하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잘한 선택은 뒤늦게라도 영어를 시작한 것입니다.제가 동기생 중 가장 먼저 대령으로서 부사단장을 3년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 어려운 암울한 좌절의 시기 였습니다. 그러나 몸은 편한 시기 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다 생각하고 과감하게 늦었지만 군사영어반 과정에 입교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입교 당시 종합행정학교장 훈시에 "이제 여러분의 팔자가 달라집니다."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정말 그 교육 덕분에 한.미 연합사 작전 참모부에 근무하게 되었고, 그 경력으로 합참대학에 교수로 보직될 수 있었고, 또한 군무원 교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영어가 터닝 포인트가 되어 팔자가 달라졌습니다.


네 번째 참 잘한 선택은 국선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6년이 되어갑니다만 좋지 않았던 제 건강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나이보다 젊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읍니다. 건강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항시 활력과 의욕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국선도 수련으로 인도 해 준 동료교수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련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제 공직을 떠나 제 2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그동안 은퇴를 위해서 크게 준비한 것은 없습니다.다만,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합니다.그것이 국가가 제게 베풀어준 혜택을 다소나마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하고자 합니다.


이제 공직을 떠나며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저의 마음을 대변 하는 듯한, 제가 좋아하는 “마이 웨이" 노래 말을 낭송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마이 웨이”


자,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군요.

제 공직 생활의 막을 내려야 하는 때가 되었군요.

친구들이여, 이 자리에서 꼭 해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네.

나는 내가 소신껏 살아왔던 

나의 삶의 방식을 이야기 하고자 하네.


나는 꽉 찬 충만한 삶을 살았고

정말 많은 곳에서 근무하며,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내가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나는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것일세.

후회!?  없다고 할 수는 없지.

그렇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꼭 기억 해 내야 할 정도로 많았던 것은 아니었네.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었고 예외 없이 나는 그것을 끝까지 해냈네.

나는 올바른, 계획된 정도의 길을 따라갔지만

때로는 쉬운 지름길을 따라 조바심 내며 가기도 했네.

그러나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나는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걸세.

그래 맞아! 

자네들도 잘 알겠지만 

어떤 때는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런 일을 겪는 동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의심이 가면, 믿었던 것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모든 것과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나는 당당하게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네.

사랑도 했었고, 웃기도, 울기도 했었지

승리하기도 했었고, 가질 만큼 가져도 봤고,

잃을 만큼 잃어도 봤지.

이제, 지나고 보니 모두 즐거운 추억일 뿐일세.


내가 했던 모든 걸 생각하니, 부끄러워할만한 것은 없었지.

나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나는 달랐어!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방식대로 살았어. 라고 말일세.

사나이가 무엇으로 사는가?

남자가 가진 것이 과연 무엇이겠어?

자신만의 소신이 없다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겠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소신껏 말하는 것이

진정 남자가 아니겠어?

내 경력이 말해주고 있듯이 

나는 나에게 닥친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고

항상 내 방식대로 소신껏 해결 했어

그래, 그것은 나만의, 나의 삶의 방식이었네.

 

                                  * 감사합니다. ^^ *



My Way - Frank Sina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