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大雪과 남한산성 雪踏<14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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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거여2동/남한산성 등산로 성골마을출발점-성불사-능선-약수터-산 할아버지계곡-산림초소능선-옹성-암문-서문(유턴왕복)
올해 서울의 겨울은 지난해 언론에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겁을 주던 장기기상전망만큼 그다지 춥지도 않았고 눈도 자주 오거나 많지 않았다. 강원도 산간지대, 철원이나 화천, 경상도 일부내륙 등지의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곤두박질치고, 서해남부나 영동지방은 폭설이 지속돼 농가 비닐농장을 뭉개고 마을길까지 메워버리는 피해를 올해도 주고 있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2월8일은 종일 눈이 내렸다, 예보에서는 새벽과 저녁에만 비 또는 눈이 1mm정도가 내릴 것이라 했지만 최근에 잘 맞던 기상예보가 빗나갔다. 서울 대설주의보는 당일에서야 뒤늦게 나온 것이다. 하필 이날 딸네가 이사를 하게 돼 걱정이었더니 다행히 비대신 눈이었다. 아침엔 약하게 푸슬푸슬 거리더니 오후에 들어서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함박눈으로 변해갔고 밤중엔 제법 눈보라까지 쳤었다. 무사히 마친 딸네 이사를 지켜본 뒤, 나가본 친구들과의 만찬약속장소 서울 중앙우체국 일대 명동거리에 넘치는 청춘 인파들 사이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었지.
폰4
이튿날 9일 아침, 기상해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아파트정원은 백색의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2층이어서 아파트의 풍성한 녹색조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길 건너 오금공원동산의 숲으로 시야가 이어져 언제나 그린벨트를 감상할 수 있는 은혜로운 조건의 환경이다.
그런 그린벨트가 이날은 화이트벨트다. 간밤의 눈이 습기를 머금은 탓에 나뭇가지에 엉겨 붙어 환상적인 설화를 꽃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001 005 006
정원의 설화가 이렇다면 산의 숲은 어떤 장관을 보여줄 것인가? 더 무슨 말을 하랴. 그래서 최근 뜸했던 산행에 갑자기 나서려고 작정했다. 일요일 전철이용 자전거 라이딩에 나서려던 계획을 급 변경하고 만 것이다. 낯의 기온이 영상으로 오른다니 그 멋진 설화들이 덧없이 사라지는 걸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사진에라도 함 담아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대로의 산설(山雪)을 감상하자면, 강원 태백산-전북 덕유산-전남북 방장산-충북 소백산 등 전국구의 명소를 찾아야 하겠지만, 이날처럼 갑자기 나설 경우라면 대설이 내린 날의 근교 산으로도 충분하다 할 것이다. 특히 광활한 설원(雪原)을 눈과 가슴에 담는 게 아니라, 설화(雪花) 같은 디테일을 카메라에 담기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은 남한산성! 아파트후문 앞 3315버스로 거서 내린 거여동 남한산성등산로입구(비호부대정문 느티나무 만남의 광장)골목엔 예상대로 산행인파가 미어터진다. 산행들머리는 가장 단거리로 산에 붙을 수 있는 성불사방향으로 잡아들어서니 하마부터 멀리 서문성벽이 우뚝 솟아 보이는 남한산성 청량산의 자태는 벌써부터 온통 하얀 세상이고, 잠시 들려본 성불사 경내도 백설 속에 고즈넉하다.009 010 012
수많은 산행 인파들이 정밀(靜謐)한 설산 안으로 줄이어 파묻히는데. 나는 비록 낮고 작은 산이지만 심설(深雪)의 진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인적 드문 계곡코스로 길을 잡으니 펼쳐지는 사위(四圍)는 과연 눈 속에 묻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른 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설곡(雪谷) 산행을 홀로 즐기기에 벅차다.013 014 016 018
아 자연이야! 앞으론 짐승 발자국이 나를 유혹하고 뒤로는 내가 남긴 발자국이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두발을 나란히 모아 도움닫기를 하면서 발자국 사이에 스친 흔적까지 남긴 걸 보면 산 토끼가 분명하다. 021 023 022
눈 내린 겨울계곡산행은 참으로 위험하지만 남한산성 정도에선 오히려 눈 속에 발을 파묻고 걸을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지. 주위의 수목과 잡초들은 그냥 보면 볼품없을 것이지만, 저마다 한 아름씩 눈을 이고 보면 어찌도 그리 멋져지고 아름다워 보이는지!! 그것이 눈의 조화이고 그래서 백설부(白雪賦)를 지어 눈을 찬미하지 않았던가? 심산(深山)이 아니어도 이리 적막고요한 눈의 계곡을 디디고 오르면 가슴이 벅차오르긴 마찬가지다. 자연이 주는 오묘한 선물에 감사한다. 019 028
이번에 나타난 짐승발자국은 급경사를 오르면서도 보폭이 길고 발자국이 깊은 걸로 보아 적어도 토끼를 넘어서 고라니 정도는 될 모양이다. 고라니? 발자국을 따라 눈 속에 길이 사라진 비탈을 타고 올라서니 일반산객들이 다니는 능선 산행 길이다. 034 035 036
설경에 도취돼 흥분한 산객들은 곳곳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찰칵찰칵. 그러니 전반적인 산행의 진행로가 막히고 시간이 지체돼도 이를 탓하는 이들은 없다. 멋진 포토 포인트는 줄 서서 기다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심전심의 그런 모습들은 차라리 정겹다고나 할 일이다. 039 041 042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수목에 가득 쌓인 설화도 보기 좋지만, 안개가 얼어붙은 상고대의 투명한 빙화도 가경이고, 큰 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어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가루라도 받아 가녀린 눈꽃 결정을 맺어 장식된 관목들의 설화의 디테일도 정말정말 신비로웠다. 내 카메라 수준으로 그 세밀함을 다 담아낼 순 없었지만~055 048 049 050 051
한편 카메라 앵글에 비쳐질 미술학적 구도의 아름다움은 자연만으로도 좋지만, 적절한 인공구조물이 들어서 조화를 이룰 때야 더 작품적일 수가 있다. 남한산성의 옹성과 성곽과 암문과 누각 그런 구조물들이 설경 속에 눈을 머리와 어깨에 이고 자리할 때, 우리의 시계에 들어오는 그림은 또 다른 운치를 더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053 056 058 061 064 066
산성에 올라 서문을 바라보며 어디로 더 진행할까 하다가, 장갑 한 짝이 없어진 걸 알아차렸고 계곡비탈을 올라서며 자동 촬영하려고 나뭇가지에 받침대로 얹어놓았다가 그대로 두고 온 것이 생각나 여기서 그대로 유턴해 돌아가기로 했다.
또한 산행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은 건, 집을 나설 때 집사람이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삼겹살을 구어먹자고 했던 말이 불현 듯 떠올라, 눈길에 버려둔 장갑도 되찾을 겸 귀로를 재촉했다.069 070 076
역시 이 계곡비탈은 사람이 안 다녔군! 내가 올라왔던 발자국만 있었고, 나뭇가지에 얹어두었던 장갑도 얌전하게 그대로 있네. 이후의 내리막 깊은 계곡은 눈 위를 스치는 바람소리만으로도 내 전신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며 심신의 쇄락, 그 자체로 한없는 정양(靜養)이 되게 해준다. 그러니 어찌 이리 즐겁지 않을 수 있을 소냐?078 080 081 083 084 087
계곡으로 다시 내려서 산을 벗어나는 날머리는 이 계곡(심성암 계곡)길의 등산로를 거룩한 자연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사비를 들여 단장하신 <산 할아버지>의 공덕의 길이다. 작고하신 그분을 추모해서 세운 흉상에는 오늘도 산객들이 추모와 존경의 표시로 막걸리 한 병을 차려주셨으니. 산정무한(山情無限)은 바로 이런데 어울릴 말이로다! 이렇게 오늘 “남한산성” 설답(雪踏)은 근거리 낮은 산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은 산 맛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091 093 095 096 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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