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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회 오산죽미령 유엔군 초전(初戰)전적지탐방 <171018>

sanriro 2018. 1. 25. 13:47





심우회 오산죽미령 유엔군 초전(初戰)전적지탐방 <171018>

  


  

 

심우회는 20173/4분기 정기모임의 일환으로 1018 회원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산 죽미령의 유엔군 초전지를 탐방했다.

시기적으로 내외의 적으로부터 한미동맹 자체의 존속조차 위협받는 상황에서, 예년에는 국가적 기념일로 기리던 <유엔의 날>1024일을 6일 앞두어 가진 시의적절한 행사여서 의미가 깊었다.

 

우선 이날 탐방지 오산 죽미령 전투에 대해서, 당시의 상황과 역사적 의의를 반추(反芻)해본다. 1950625일 북한군이 남침하자, 유엔은 26일 유엔군 참전을 안보리 1차 결의안으로 가결하고, 27일 미국 해공군이 참전한데 이어, 28일 유엔은 안보리 2차 결의안도 가결시킨다.

이에 따라 71일 미국 지상군과 오스트리아의 해공군이 참전했고, 미국의 지상군이 한국에 투입돼 오산시 죽미령에서 남진중인 북한군과 첫 전투를 치렀는데 그게 75일이다. 개전 10일 만이란 사실에 놀라게 된다.

195075일의 죽미령 전투는 6시간 15분 만에 미군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75일 새벽3, 빗속을 뚫고 죽미령 고개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도로와 철로 부근에 진지를 구축했다. 도로를 포함한 좌측 능선에 B중대를, 철로 좌측 편에 있는 진지 내 우측 고지에는 C중대를 배치하고, 105mm 포대를 죽미령 후방 수청리에 포진시켰다.

오전 7시 수원근처에서 북한의 전차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816분 첫 사격을 시작으로 스미스부대는 포탄을 쏘아대며 공격했지만 소련제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오전10, 10km에 달하는 긴 행렬의 북한군 트럭과 보병이 나타났다. 3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보병을 향해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박격포와 기관총을 쏘아댔고 아군, 적군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병사들이 쓰러져 갔다. 그러나 북한군이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동시에 전차가 중앙을 돌파하면서 방어선은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탄약과 병력이 소진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230분 퇴각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540명 중 보병 150여 명, 포병 31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으며, 북한군 역시 약 5,000명 중 15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

 

이 유엔군과 북한군의 죽미령 첫 전투는 승패와 관계없이 유엔군의 참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북한군은 미군이 참전하지 않거나 적어도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으로 남침을 감행했지만, 남침개시 10여 일만에 미 지상군의 참전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또한 유엔군의 파병은 유엔창설 이후 처음으로 유엔의 기본정신에 입각하여 유엔기를 앞세우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집단적 행동을 펼친 점에서 중대한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고 하겠다. ( 이상, 네이버사이트유엔군초전기념관자료마당-“유엔군참전일지” “죽미령전투 참조)

 

특히 죽미령 전투는 미국의 참전을 북한에 알리기 위한 지상군 조기투입이었고, 그것도 10일 만이란 놀라운 속도로 투입 해, 북한의 전쟁지도부를 크게 당황하게 했다. 처음부터 이런 심리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이런 사실 앞에 선 우리가 심리전 전우들로 뭉친 심우회 회원들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이 전적지 탐방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유엔초전지 방문 후 인근의 유명한 소갈비살 숯불구이 전문식당 운봉에서 점심을 하고, 조선조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절절한 사연이 담긴 용주사와 융·건릉을 돌아보고 귀경하며 행사를 마친다.

 


죽미령 유엔초전지 탐방 영상스케치<181018>

 

 

유엔초전지

 

유엔 초전 기념관에 도착, 기념비로 올라가 0001 3827 0002


 

참전희생 미군을 추모하고 기념촬영 6438 0003 8824


 

기념관과 일대를 돌아보고 0005 08 1787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0006 07

 

기념관 해설사로부터, 38선과 휴전선의 차이-남침 10일만의 즉각 투입된 스미스 부대의 의미-유엔창설 유엔군 첫 전투-미군참전을 북에 알리려는 심리전 의도 등, 상세한 설명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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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주카포(로켓포)로 북한군 전차에 대항한 젊은 미군들 0015 16


 

죽미령 전투상황을 입체영상으로 실감나게 재생한 설명도 진지하게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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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미령 전투에 참전했던 미군들의 명패들과 추모코너 0024 25 28


 

스미스부대장 스미스 중령, 포위된 미군의 안전철수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포병대장 페리, 당시 한국출신 연락장교 윤성국 대위 등 당시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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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을 나와 원래의 전투진지가 위치했던 길 건너 동산의 초전기념비를 찾아봐. 1955년 미군들이 처음 세웠고 1964년 한미 군과 관계기관들에 의해 보수되었고, 일행이 추모하고 기념 촬영했던 길 건너 기념관 쪽 대형 기념비는 경기도에 의해 새로 세워졌다.

7241 0033 34 35


 

 

용주사와 융·건릉

 

 

조선왕조의 효성 지극한 정조 대왕에 의해 사도세자를 기려 만들어지고 조성된 용주사와 융·건릉을 찾아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가을 정취를 만끽

 

용주사 풍경 0036~48 1591 8911 1749


융건릉 풍경 0049~53 1753 8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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